선명함과 모호함의 경계 (Real and fuzzy distinctions)
나는 내 몸 속의 생명을 아기라고 불렀다.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걸 죽여도 상관없는 세포 덩어리로 여겼을 것이다. 본질은 동일했다. 그것의 생사를 결정한 건 그에 대한 내 반응이었다. 나한테는 그게 비합리적으로, 심지어는 비도덕적으로 여겨졌다. - Myranda Sawyer<옵서버>
사람들은 인생에 회색지대가 가득하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흑백논리를 선호한다. 이상한 노릇인 건, 명료한 생각을 추구하느라 이 단순한 진실을 잊어버리는 건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들마저도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런 수준 이상으로 개념을 나누고 구분하려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올바른 사고라면 삶의 회색지대를 통과할 때 그 사실을 숨기지 말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안개에 휩싸인 회색지대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미란다 소여의 경우에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그런 인식의 안개에 휩싸였던 것 같다. 소여는 아이를 가진 후 낙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예전에는 단호한 낙태 찬성론자였는데 지금은 심란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가 고민하는 건 자궁 안에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전형적인 의문이었다. 그건 세포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인간의 아기인 걸까? 소여는 여기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각자 부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야 말로 조금 불편한데, 아기를 죽이는 것과 세포를 죽이는 것 차이가 다만 언어의 문제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처음엔 몇 개의 세포였던 것이 점진적으로 인간의 아기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문제는 어느 시점으로 그걸 나누더라도 인위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데 있다. 낙태반대론자들이 그 시점을 임신한 순간으로 보고, 처음부터 아기였음을 강조함으로써 모호함을 지워버리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생명주의자’들과 소여는 모두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두 개의 상태, 또는 개념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으면 그들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걸 하나로 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궁 속의 세포에 같은 시각을 적용하되, 소여는 유의미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아서 혼란에 처하게 되었다고 토로한 반면, 낙태반대론자들은 그러니 그런 무의미한 구분은 집어치우고 처음부터 인간이 생명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통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낙태의 윤리에 대하여 여기서 다루지 않겠지만, 이 두 입장에 논리 오류가 심각한 것은 틀림없다. 언어의 논리가 자연의 모호한 구분을 묘사하기에 역부족이더라도 경계는 엄존하며 그 경계로 나뉘는 분류가 실재한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색깔이 좋은 예다. 모든 색을 점진적으로 나열한 스펙트럼을 보면 빨간색이 주홍색이 되거나 녹색이 파란색으로 변하는 지점을 포착하기 힘들다. 그래도 주홍색과 빨간색, 녹색과 파란색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경계선을 긋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세포들과 완전한 인간이 다르다는 주장을 전자가 후자로 변하는 시점을 포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박할 수는 없다. 뚜렷하고 확고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질적인 구분의 존재를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명확한 사고는 삶의 회색지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모호함을 거부하는 경향은 논리보다는 심리의 차원이다. 예를 들어 무장한 민병대를 테러리스트로 볼지 자유의 전사로 볼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불확실성을 방치하느니, 그런 구분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저항세력이라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는 권력자들, 자유의 전사들과 똑같은 도덕성을 누리고 싶은 테러리스트들에게나 어울리는 태도다.
★★
경계선을 긋지 않고 뭔가를 구분하는 건 쉬운 일일까? 합법적인 기업행위와 무자비한 자본주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산적인 자선과 그렇지 못한 연민은? 정당한 무장 개입과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군사도발은? 적정한 수준의 성적 유혹과 상처를 주는 성도착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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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타법을 버리기 위한 자판익히기를 하다가.......그냥 두드리기만 하는 건 의미없는 짓이라 같이 읽었으면 하는 책 한 권을 골라 이렇게 올리면 좋지 싶어 한 번 시도 해 봅니다.
2011/05/31 15:35 [ ADDR : EDIT/ DEL : REPLY ]지금 올린 것은 줄리언 바지니의 <가짜 논리>(한겨레출판)의 첫 장 입니다.
끝까지 다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애는 써 보겠습니다.
(독수리 타법 버리니 되게 느리네... ㅜㅜ)
딴소리) 졸리운님은 상당히 유니크한분에 속하세요.(제가 보기에는 ^^)..언젠가 산행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영혼을 향해,,깊은 애정을 가지고 (여행기나 산행기등..) 글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떠실지...!!
2011/05/31 20:54 [ ADDR : EDIT/ DEL : REPLY ]내게 무슨 애정을 줄 영혼 따위가 있는지.......ㅜㅜ 암튼 그런 영혼을 찾으면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2011/06/01 23:36 [ ADDR : EDIT/ DEL ]기대됩니다
2011/06/01 01:2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