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2009/12/13 21:13
2. 인간중심적 사고의 '외부'를 사유하기 위한 전략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

 우선 <에티카>를 집필한 스피노자의 주된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1부 '부록'인데, 여기서 우리는 스피노자가 이른바 '목적론적 사고'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밝혀보려고 하는 모든 편견들은 다음의 한 가지 편견에 의거한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모든 자연물도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고 추측하며, 게다가 그들은 신이 모든 만물을 어떤 특
  정한 목적에 따라 이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만물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
  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자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으며,
  모든 목적인(目的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fiction)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1부, 부록)

 스피노자가 목적론적 사고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모든 철학적 질서에 혼란을 가져오면서 원인과 결과를 온통 거꾸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자연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긴다. 태양이 존재하는 목적은 빛을 비추기 위해서이며, 바다는 물고기를 기르기 위해 존재한다. 보기 위한 눈, 씹기 위한 이, 인간에게 음식으로 제공되기 위해 자라는 각종 동식물들. 이 모든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구분된다.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를 나누며, 익충과 해충을 구분한다. 하지만 태양은 인간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동식물들이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자연만물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목적'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사실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구 철학사 내에서 매우 빈번하게 등장했던 테마라 할 수 있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저절로 생겨난 것은 없다. 가위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자르기 위한 것이며,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꽃은 피어서 열매를 맺어야 하며,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물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의 본질이 된다. 신발의 본질을 안다면 우리는 오직 그것을 발에다 신는데 사용할 것이다.

 목적론적 사고 속에서 사물은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본질만을 가지며, 그러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미완의 존재들로 간주된다. 사물의 변화는 오직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과정으로 설명되며, 이로부터 벗어난 것은 비본질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일 따름이다. 씨앗에서 우리는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직 '가능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나서 커다란 나무가 될 때, 그 씨앗의 본질이 무었이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물의 본질은 마지막에 완성된 후에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오직 최종적인 완성, 즉 본질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들인 것이다! cf. 헤겔의 역사철학.

 스피노자는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자연만물들은 어디로부터 오게 되었을까? 그것들은 분명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제공해주는 어떤 전능한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은 신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신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잣대를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 마치 근엄하고 전능한 군주와 왕과 같은 존재일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신은 백성들을 지배하는 군주와도 같이, 인간으로부터 숭배를 받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세상 만물은 바로 신과 가장 흡사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지어진 것이리라. 그들로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신과 자연만물에 대해 가장 손쉽게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로부터 자연의 질서는 온통 거꾸로 이해되며, 신에 대한 온갖 미신적인 숭배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신이 자신만을 특별히 선택하여 총애해주기를 바라면서 신에게서 보다 많은 축복을 받아내기 위한 각종의 미신적 행태를 고안해낸다. 폭풍우와 지진, 질병 등이 생겨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분노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의 분노를 사는 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분노한 신을 달래기 위해 각종의 제의가 행해지고, 심지어 인간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신에게 용서를 받고자 애쓰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자 하기 보다는, 이를 신의 재량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신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임의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에 일어나는 현상들의 진정한 원인을 찿으려는 시도를 불경건한 짓이라고 비난하고, 자연 현상들 속에서 '신의 의도'를 담고 있는 온갖 징조를 발견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붕 위에 있던 돌이 갑자기 누군가의 머리에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그 돌이 '신의 의지'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람에 의해 돌이 움직였다면 왜 하필 그때 바람이 불게 되었으며, 하필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거기를 지나갔겠는가? 털끝 하나라도 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행태와 생각은 사물의 진정한 원인, 즉 그 본성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연 현상으로부터 '자극'받은 대로 상상해낸 것에 불과하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물의 원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 역시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가의 여부에 따라 충독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보다는 그것의 유용함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며, 사물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이 어떤 질서에 따라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여기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세상에는 인간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 무수하게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에게 유리하다고 해서 그것이 더 완전하다거나 선한 것이라 말할 수 없고, 반대로 인간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그것이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외부'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외부'를 발견할 수 있느냐에 놓여 있다. 과연 우리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참된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인간인 이상에 애초부터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인간인 이상에 미신으로터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사물로부터 자극받은 대로 상상한다는 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스피노자는 기존의 스콜라 철학의 개념들과 데카르트 철학, 그리고 근대의 기하학적 방법을 십분 활용한다. 『 에티카』의 첫장을 펼치면 신에 대한 몇 가지 정의와 증명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어떻게 전통적인 신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이제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Posted by 구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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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향미..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 어떨지..너무나 궁금해요^^

    2009/12/14 14:19 [ ADDR : EDIT/ DEL : REPLY ]
  2. 졸리운

    스피노자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이다.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의 그리스도이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이란 스피노자의 사도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질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것인데.....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모르다니(대충 자연주의자 염세주의자 정도로만 소개 받았으니.....) 나도 참.....

    아무튼 서구의 철학은 신(그것이 기독교적이든 아니든, 그것을 절대자라 부르든 초월자라 부르든, 그것에 우호적이든 비호의적이든 간에)에게서 자유롭지 못한(여기서 자유란 신을 인식의 바깥으로 내 모는 것이라 해야하나?) 것 아닌가 한다.

    2009/12/14 16:56 [ ADDR : EDIT/ DEL : REPLY ]
  3. 나는나

    구름재님이 올리신 스피노자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마다, 저는 아직도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뭐 아직 앞날이 창창하단걸 위안 삼아 천천히 읽어가면 될려나요?^^;

    2009/12/15 02:26 [ ADDR : EDIT/ DEL : REPLY ]